8호 / 9 · 종이 위의 편지

덜어낸 것들의 목록

이 앱에 없는 것들은 실수로 빠진 게 아닙니다. 기능이 늘수록 일기가 줄어드는 이유에 대하여.

앱을 소개할 때는 보통 있는 기능을 나열합니다. 오늘은 반대로 해 보려고 합니다. 이 앱에 없는 것들의 목록입니다. 회원가입이 없습니다. 피드와 좋아요가 없습니다. 연속 기록 숫자가 없습니다. 하루를 몇 점인지 매기는 화면도, 이번 주를 분석해 주는 그래프도 없습니다.

하나하나가 의도적인 결정이었습니다.

기능이 늘수록 일기는 줄어듭니다

일기 앱은 이상한 운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업데이트를 거듭할수록 좋아지는 게 아니라 무거워지기 쉽습니다. 태그, 템플릿, 통계, 목표, 스탬프. 하나하나는 유용해 보이지만, 쌓이고 나면 앱을 열었을 때 마주하는 것이 "쓰는 화면"이 아니라 "관리하는 화면"이 됩니다.

기록을 시작하기 전에 결정할 것이 많아질수록, 기록은 뒤로 밀립니다. 오늘 기분을 다섯 단계 중에서 고르고, 카테고리를 정하고, 태그를 붙이다 보면 정작 쓰려던 한 줄은 어디론가 사라져 있습니다. 도구가 커질수록 일은 작아지는 역설입니다.

열자마자 쓸 수 있는 화면

그래서 이 앱은 여는 순간 일이 하나뿐이도록 만들었습니다. 오늘 사진 한 장을 고르고, 한 줄을 적는 것. 그 앞을 가로막는 단계가 없습니다. 로그인 화면도, 오늘의 질문도, 어제 못 쓴 것에 대한 안내도 없이 바로 그 자리입니다.

빈 종이 한 장과 인화된 사진 한 장만 놓인 책상
빈 종이 한 장과 인화된 사진 한 장만 놓인 책상

설정 화면도 일부러 짧게 유지하고 있습니다. 고를 것이 적다는 건 신경 쓸 것이 적다는 뜻이니까요.

덜어낸 것들이 지키는 것

없는 것들의 목록을 다시 보면,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전부 기록 바깥의 일이라는 겁니다.

계정은 기록이 아니라 관리입니다. 좋아요는 기록이 아니라 반응입니다. 연속 기록 숫자는 기록이 아니라 성적입니다. 통계는 기록이 아니라 평가입니다. 이런 것들이 없어야 앱을 열었을 때 남는 게 딱 하나가 됩니다 — 오늘 하루와, 그걸 담을 빈 자리.

무언가를 덜어낼 때마다 지키려던 건 같았습니다. 쓰는 일이 계속 사소한 일로 남아 있는 것. 사소해야 매일 할 수 있으니까요.

계속 쓰게 되는 이유

돌아보면, 오래 쓰게 되는 도구들은 대부분 조용한 도구들이었습니다. 연필이 그렇고, 자주 쓰는 공책이 그렇습니다. 기능이 많아서가 아니라, 쓰려고 할 때 아무것도 방해하지 않아서요.

이 앱이 되고 싶은 것도 그쪽입니다. 화려한 앱이 아니라, 매일 저녁 1분씩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앱. 그 1분이 몇 년치 쌓였을 때, 덜어냈던 것들이 무엇을 지켰는지 보이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아카이브

지금까지의 편지

처음부터 차례로 읽으면 하루 한 장의 규칙이 왜 이렇게 작고 조용하게 설계되었는지 보입니다.

  1. 1호 사진 한 장과 한 줄, 그게 전부인 일기
  2. 2호 며칠 빠뜨려도 괜찮은 일기
  3. 3호 올릴까 말까, 그 3초가 없는 기록
  4. 4호 사진이 쭉 늘어선 달력
  5. 5호 그 일기는 어디에 있나요
  6. 6호 왜 '오늘의 인화지'인가요
  7. 7호 홈 화면에 놓인 오늘
  8. 8호 덜어낸 것들의 목록 읽는 중
  9. 9호 10년 뒤에도 열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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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한 장으로 남겨보세요

사진 한 장과 짧은 글이면 충분해요.